고려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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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조가 존속한 918년부터 1392년까지 경기도 화성 지역의 역사. 남양만을 끼고 있는 경기도 화성 지역은 고대 사회 이래로 서해안 교통의 중심지였다. 고려 시대에는중국과의 교역 통로로서의 기능도 있었지만, 조세를 운반하는 조운(漕運)의 중요 통로였고, 수시로 자행된 왜구의 침탈을 막기 위한 방어 거점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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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조선 시대 경기도 화성·수원·오산 지역 일대에 있던 지방 행정 구역. 수원도호부(水原都護府)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동부 일대와 수원시, 오산시 등을 관할한 지방 행정 구역이다. 화성시의 현재 행정 구역 중 조선 시대 수원도호부에 속하였던 곳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안녕동·병점동 등 동지역, 봉담읍·향남읍, 매송면·팔탄면·정남면·양감면 등의 지역이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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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화성 지역에 있던 지방 행정 구역. 남양도호부(南陽都護府)는 조선 시대 지방 행정 구역으로,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마도면·비봉면·송산면·서신면 등을 관할하였다. 읍치는 남양읍에 있었다....
조선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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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가 존속한 1392년부터 1863년까지 경기도 화성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화성 지역에는 수원도호부와 남양도호부가 설치되어 있었다. 지금의 행정 구역을 기준으로, 수원도호부는 봉답읍 등의 화성시 동부 지역과 수원시·오산시 일대, 남양도호부는 남양읍을 비롯한 화성시 서부 지역을 관할하였다. 남양도호부는 수원도호부에 비해 인구가 적고 위상은 낮았지만, 남양만 일대의 해안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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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기도 화성·수원·오산 지역 일대에 있던 지방 행정 구역. 화성유수부는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도호부 읍치가 자리한 화산(花山)으로 옮기고, 팔달산 아래에 새로운 읍치를 조성하면서 탄생하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수원 화성'은 화성도호부를 둘러싼 성곽이다. 구읍치가 있던 화산은 현재 지명도 화산인데, '화성 융릉과 건릉'이 있는 경기도 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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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기도 화성 지역에 설립된 전문 예인 집단의 자치 조직. 화성재인청은 조선 후기에 설립된 재인(才人)·무부(巫夫)·광대(廣大) 등의 자치 조직이다. 재인청은 신청(神廳)·광대청(廣大廳) 등으로도 불렸으며, 경기도·충청도·전라도의 각 군에 두었다. 각 도에는 도청(都廳)을 두었고, 도청의 우두머리를 대방(大房)이라 불렀다. 대방 아래에는 두 명의 도산주(都山主)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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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경기도 화성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벌어진 일본과의 전쟁. 임진왜란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벌어진 일본과의 전쟁이다. 보통 1차 전쟁이 일어난 1592년의 간지를 따서 임진왜란이라고 총칭하며, 일본의 2차 침입만을 따로 지칭하는 경우에는 정유재란이라고 부른다. 조선 시대에 화성·수원 지역은 남양도호부와 수원도호부가 관할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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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 12월부터 1637년 1월까지 경기도 화성 지역을 포함한 조선 서북부 및 중부 지역에서 벌어진 청나라와의 전쟁. 1627년 1월에 발생한 정묘호란의 결과, 조선은 후금과 형제의 맹약을 맺고 교역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이후로도 후금은 변경 지방을 침입하여 약탈하는 등 수시로 조선을 도발하였다. 나아가 만주 점령 후 만리장성을 넘어 명나라를 압박하는 과정에서는 형제의 맹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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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에 사도세자의 무덤인 영우원을 경기도 화성 지역으로 옮겨 현륭원을 조성한 일. 정조는 즉위 직후 자신의 생부 사도세자를 장헌세자로 추숭하고, 양주 배봉산[지금의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동 배봉산]에 있던 사도세자의 묘인 수은묘(垂恩墓)를 영우원(永祐園)으로, 제례를 치르는 곳을 경모궁(景慕宮)으로 격상시켰다. 영조가 생모 숙빈 최씨의 묘를 소령원(昭寧園)으로 봉원(封園)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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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도성과 경기도 화성 지역을 포함한 지방을 연결하던 교통 및 통신 제도. 조선 시대에 화성 지역은 호서·호남 지방에서 한강 이북으로 진출하는 길목에 자리한 교통의 요지였다. 이에 조선에서는 국가의 공적 도로망을 편제하는 과정에서 화성 지역에 4개의 역을 설치하였다. 역에서는 왕명과 공문서의 전달, 사신의 왕래에 따른 영송, 공공 물자 운송에 필요한 말 공급 등의 업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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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지역에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있던 역. 동화역(同化驛)은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에 있던 역으로, 양재도(良才道)에 속하였다. 한양과 과천, 수원, 충청도를 잇는 역로상에 자리하고 있어 지리적 중요성을 가졌다. 임진왜란 시기에 일본군이 동화역이 속한 양재도를 따라 한양으로 북상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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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지역에 있던 조선 시대 역. 해문역은 조선 시대에 남양도호부 관내에 있는 양재도의 속역이었다. 해문역이 자리한 양재도는 한양과 수원부, 남양부를 연결하는 역로였기 때문에 정조가 화성 또는 현륭원에 행차할 때 주요하게 기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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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화성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시행된 지방 방위 체제. 조선 초기의 방위 체제는 북방 국경 지대와 남방 연해 지대를 방어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북방 지역에는 군익도(軍翼道) 체제가 시행되고 있었고, 남방 지역에는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연해의 요충지에 진을 설치하였다. 반면 내륙 지역에는 이렇다 할 군사 조직이 없는 상황이었다. 경기도의 경우 단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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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지역에 있던 조선 시대 해양 방어 기지. 영종포는 조선 초에 수도 한양의 방비와 조운로의 보호를 위해 설치되었다.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에 설치된 화량진과 함께 한강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방어하는 거점 군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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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지역에 있던 조선 시대 수군 진영. 화량진이 설치된 남양만 일대는 신라 시대 이래 서해안 지역의 교통·군사적 요지였다. 그러나 화량진의 정확한 설치 시기는 알기 어려운데, 1358년(공민왕 7)에 왜적이 화지량(花之梁)을 불태웠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늦어도 14세기 중반에는 설치되어 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 화량진은 조선 시대에 들어서도 남양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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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지역에 있던 조선 시대 포구. 고온포는 조선 시대에 수원부 압정면(鴨汀面)에 속하였다. '고온'이란 지명은 기후가 따뜻하고, 마을 주민의 인심이 온후하고 화목하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고온포가 자리한 지역의 마을 이름도 원래 고온리였는데, 나중에 매향리(梅香里)로 바뀌었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마을에 살던 ‘서원’과 ‘구장’이라는 두 사람의 문장가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