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4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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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峰潭公立靑年訓鍊所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철웅 |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에 있었던 봉담공립청년훈련소의 설립인가문서.
[개설]
청년훈련소는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한국인 청년의 사상을 통제하고 동원을 쉽게 하고자 설립한 교육기관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청년훈련소는 1926년 제16호 청년훈련규정에 따라 일본 퇴역군인단체 재향군인회에 의해 설치되기 시작했다. 이후 1929년 조선총독부는 청소년훈련소규정을 발포(發布)하여 재향군인회가 설립한 청년훈련소를 공립으로 전환하였다. 이 시기 청년훈련소의 목적은 '청년의 심신을 단련하고 국민 된 자질을 향상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식민지 조선 청년들의 사상을 통제하고 동원을 쉽게 할 필요를 느꼈다. 이에 1938년 3월 청년훈련소 규정을 개정하여, 청년훈련소 설치 목적을 국체명징과 황국신민 자질 향상으로 못 박았다. 이러한 배경 하에 1940년에 786개, 1941년에 836개의 청년훈련소가 신설되었다. 경기도에는 1940년 61개 청년훈련소가 설치되었으며, 1941년에는 66개가 설치되었다.
[제작 발급 경위]
「봉담공립청년훈련소」는 봉담 지역에 청년훈련소를 신설하여 관리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형태]
「봉담공립청년훈련소」는 수기로 작성되었으며, 28페이지 분량의 일반문서 형태이다.
[구성/내용]
「봉담공립청년훈련소」는 첫째, 명칭, 위치, 규칙, 생도개수(生徒槪数), 개소년월일·인가일, 경비 및 유지 방법, 완성시 생도정원수, 주사 및 지도원 등의 간략 정보, 둘째, 봉담공립청년훈련소 상세 규칙, 셋째, 1941년 봉담공립청년훈련소의 세입과 세출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봉담공립청년훈련소의 훈련과목을 살펴보면, 수신 및 공민과 100시간, 교련과 350시간, 보통학과와 직업과 250시간 등 총 700시간으로 편성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1년에 수신 및 공민과 30시간, 교련과 100시간, 보통학과 17시간, 직업과 37시간 등 총 184시간을 이수하여 4년 간 736시간을 이수했다.
1941년 봉담공립청년훈련소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주사에 상야화부[上野和夫]가 있었으며 담당 과목은 수신 및 공민이었다. 본직은 국민학교 교장이었다. 교육원으로는 대삼평생[大森平生]이 교련을, 최충운(崔忠澐)[창씨개명한 이름은 목산충(牧山忠)]이 보통학과를, 홍문선(洪文善)[창씨개명한 이름은 삼정문선(三井文善)]이 직업 과목을 맡았다. 최충운과 홍문선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인 역시 청년훈련소의 지도원으로 임명되었으나 내선일체·황국신민의 정신교육을 담당하는 수신 및 공민과 과목과 교련지도는 일본인이 담당하였다.
[의의와 평가]
설립 초기 청년훈련소는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청년들을 중심으로 공민으로서 지식과 직업 능력을 함양시키는 사회 교육적 의의가 있었다. 그러나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일본제국이 급속히 군국주의화 되며 청년훈련소의 교육 역시 황민화와 전시동원체제의 확립을 위한 것으로 변하였다. 봉담공립청년훈련소 역시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41년에 일제의 식민지 조선 청년의 황민화 및 전쟁 동원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봉담공립청년훈련소」는 1940년대 화성 지역에 대한 조선총독부의 국가주의적 통제가 한층 강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