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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447
한자 禪華大師浮屠碑
영어공식명칭 Memorial Stone for Seonhwa monk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기도 화성시 신동 산40-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태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46년연표보기 - 선화대사부도비 건립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566년 - 선화대사 탄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644년 - 선화대사 입적
현 소재지 원각사 - 경기도 화성시 신동 산40-1 지도보기
원소재지 만의사지 - 경기도 화성시 동탄면 신리 39[신동 산39]지도보기
성격 부도비
관련 인물 선화대사(禪華大師) 이경림(李敬琳)
재질 석재
크기(높이, 너비, 두께) 전고 177㎝, 비신높이 115㎝, 비신폭 61㎝, 비신두께 22㎝, 이수높이 59㎝, 이수폭 69㎝, 이수두께 29㎝, 전자크기 1㎝, 명문크기 1.5~3㎝

[정의]

경기도 화성시 만의사 터에 있는 선화대사의 부도비.

[건립 경위]

선화대사부도비선화대사가 입적한 후 2년이 지난 1646년에 건립하였다.

[위치]

경기도 화성시 신동 산40-1에 있다. 원각사에서 안쪽으로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넓은 옛 건물지가 나오고 그 뒤편에 선화대사 부도와 석비가 있다. 산길 왼편에 부도와 부도비가 남향하여 동서로 배치되어 있는데 동쪽에 서있는 것이 부도비이다.

[형태]

선화대사의 부도비는 지대석 위에 홈을 파서 꽂았는데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앞면과 뒷면에만 명문이 새겨져 있다. 비신과 이수는 같은 돌로 조성하였는데 이와 같이 동일석으로 조성하는 예는 조선시대의 석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이수는 구름문양과 용 문양이 가득히 조각되어 있으며, 앞면에는 용이 보주(寶珠)를 받들고 있는 역동적인 형상이 조각되어 있다. 용들의 몸은 비늘이 선명하게 표현되었고 다리에는 4개의 발가락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금석문]

앞면에는 서두에 ‘선화당대사비명(禪華堂大師碑銘)’이라 하고 대사의 출신, 행적, 찬(讚) 등 모든 관계 내용을 적고 말미에 ‘병술팔월일립(丙戌八月日立)’이라고 건립연대를 새겨 넣었다. 뒷면에는 건립의 주체와 시주자 명단이 적혀 있다. 비문은 정두경(鄭斗卿)이 짓고 오준(吳竣)이 글씨를 썼으며, 여이징(呂爾徵)이 전액을 하였다. 비문에 의하면 선화대사는 본관은 광주이고, 속명은 이경림(李敬琳)이다. 1566년(명종 21)에 출생하여 1644년(인조 22)에 78세로 입적하였다. 16세에 출가하여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로부터 수학하였다. 성품은 근면성실하였으며 총명하고 지혜가 많았다고 한다. 또한 지행이 높고 고결하여 멀리서 소문을 듣고 찾아와 법문을 듣는 이가 많았다고 하니 대사의 높은 덕망을 쉽게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선화대사부도비는 주인공과 건립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점, 특히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석비의 양식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리고 선화대사가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의 법맥을 계승한 승려였다는 점에서도 귀중한 기념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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