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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용주사 삼장보살도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396
한자 華城 龍珠寺 三臧菩薩圖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경기도 화성시 용주로 136[송산동 188]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여희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790년연표보기 - 화성 용주사 삼장보살도 제작
문화재 지정 일시 2009년 6월 24일연표보기 - 화성 용주사 삼장보살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25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 목조삼세불좌상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
현 소장처 용주사 대웅보전 - 경기도 화성시 용주로 136[송산동 188]지도보기
성격 불화
소유자 용주사
관리자 용주사
문화재 지정 번호 경기도 유형문화재

[정의]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 용주사의 대웅보전에 소장된 조선 후기 불화.

[개설]

화성 용주사 삼장보살도는 화기를 통해 제작연대 및 불화를 그린 화승에 대해 명확히 알 수 있는데, 불사가 완료되는 때인 1790년 9월에 완성되었다. 감동은 황덕순(黃德詢), 윤흥신(尹興莘)이 하였고, 증명은 등린(等麟)이, 화승으로는 민관(旻官), 돈평(頓平), 각인(覺仁), 처성(處性) 등이 공역(供役)하였다.

[형태 및 구성]

화성 용주사 삼장보살도는 크게 2단 구성으로 나뉜다. 상단에는 삼장보살이 대좌 위에 결과부좌하고 있으며, 그 주위로 그들의 권속이 시립해있다. 중앙에는 천장보살(天藏菩薩)과 그 천부중(天部衆)이 있고, 향우측에는 지지보살(持地菩薩)과 신중(神衆)들이, 향좌측에는 지장보살(地藏菩薩)과 명계 시왕(十王)들이 위치한다.

일반적으로 삼장보살도에서 천장보살의 권속이 도교의 성신(聖神)으로 구성된 성중(聖衆)이 배치되는 것에 비해 용주사 삼장보살도는 선인(仙人)들이 배치되어 있어 주목된다. 선인들은 깃털부채를 든 선인, 나뭇잎 문양을 목에 두른 선인, 머리에 수건같은 천을 덮고 영지가 담긴 바구니를 든 선인, 복숭아와 복숭아 가지를 든 선인 등이 표현되었다. 이러한 선인 묘사는 1602년 명나라의 홍자성에 의해 찬술된 홍씨선불기종(洪氏仙佛奇蹤)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하단 앞쪽에는 두명의 천녀를 묘사하였다. 천녀들은 책, 병, 복숭아 같은 공양물을 들고 측면으로 걷는 모습으로, 삼장보살도 전면에 배치되었다.

[특징]

화성 용주사 삼장보살도는 16세기부터 18~19세기까지 이어지는 삼장보살도의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특히 18세기 삼장보살도의 전형을 보여준다. 화성 용주사 삼장보살도에서 보이는 18세기 삼장보살도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우선 횡폭으로 더 넓어지는 구성에 천장보살[중앙]·지지보살[향우]·지장보살[향좌] 사이의 간격이 넓어진다. 중심에는 천장보살과 주변으로 천장보살의 권속이 배치되고 오른쪽에는 지지보살과 그 권속이, 왼쪽에는 지장보살과 권속이 자리한다. 이러한 구성은 이전 시기 각 권속들이 섞여서 배치된 것에서 한층 발전한 것으로 이시기에 이르러 삼장보살도의 각 보살과 권속별 구성에서 통일성을 갖게 된 것이다.

화성 용주사 삼장보살도 만의 특징은 도교적 도상이 강조되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홍씨선불기종에서 모티브를 얻어 선인들이 표현되었으며, 특히 하단에 공양물을 들고 있는 두명의 천녀는 화성 용주사 삼장보살도 전면에 부각되어있다. 이는 일반적인 삼장보살도 도상에서 도교의 천녀 묘사가 화면 뒤쪽에 배치되거나 거의 나타나지 않는 것과 비교된다.

화성 용주사 삼장보살도가 홍씨선불기종에서 영향을 받은 것과 짙은 도교적 색채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삼장보살도를 담당한 화승이 경기지역 출신이며 불화를 그리면서 화보를 수용하는 것에 대해 보수적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다시말해 불화를 그리면서 적용할 수 있는 도교적 모티브에 대해 거부감이 적었다는 것이다.

또한 도교와 관련하여 18세기 왕실의 영향하에 제작된 미술이라는 점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있다. 삼장보살도를 포함하여 용주사는 다른 불교미술에서도 도교적 색채로 장식되어 있는 것이 큰 특징이다. 도교적 색채를 강조한 주체는 용주사 창건을 후원한 왕실로 봐야한다는 주장이다. 용주사의 도교적 모티브는 도교적 소재가 주를 이루는 궁궐 내부와 시각환경을 공유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용주사를 또 다른 왕실의 공간으로 구현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불당을 국왕과 관련된 공간으로 만들고, 이를 통해 불교적 영험함을 빌어 국왕과 왕조의 안녕과 지속을 바라는 의도인 것이다.

[의의와 평가]

용주사 삼장보살도는 화기가 명확히 기재되어있어 1790년의 제작시기와 제작자가 확실하게 밝혀져 있다. 그리고 불화의 형식이 18세기 후반의 삼장보살도의 전형을 따르고 있어 조선 후기 삼장보살도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현륭원의 원찰인 용주사의 창건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어 역사적 의미가 크고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불화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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